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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김선우 외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 단비 2013

 

 

2007년 4월 26일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를 수십 명의 박수로 결정한 지 13년, 2012년 3월 7일 구럼비가 발파된 지 8년이 지났다.

 

서귀포 강정 앞바다의 1.2㎞에 달하는 구럼비 바위는 한덩어리로 이어진 용암단괴이다. 구럼비라는 이름은 해안가에 구럼비나무가 많다는 데서 유래했고, 구럼비는 ‘까마귀쪽나무’의 제주어다.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는 사람들에게 강정을 기억케 하고 강정을 지키기 위해 3명의 작가와 1명의 미디어아티스트가 2012년에 마음을 모아 만든 책이다.

 

 

 

 

59~60_

“거기는 작은 배들만 드나드는 포구잖아. 그런데 어떻게 큰 배가 들어온다는 거야?”

민지가 불안한 얼굴이 되어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민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거야 구럼비를 깨고 그 위에 만든다는 거지. 시멘트로 다 덮어서.”

영호가 가져온 종이를 민철이가 다시 펼쳤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종이에 표시된 기다란 직선 벽을 쭉 따라가며 가리켰다.

“봐, 여기가 해안이잖아. 근데 일직선이지? 본래 여기는 구럼비가 저쪽까지 이어져있는 데잖아. 구럼비를 폭파해서 네모나게 시멘트를 싹 바르면 바로 이렇게 되는 거야.”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이들이 한꺼번에 야유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 가운데 민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왜……, 왜 구럼비를 폭파한다는 거야?”

“그야 해군기지를 만들려고.”

“해군기지는 우리 바다와 마을을 지켜주기 위한 거잖아.”

“응, 그렇지.”

“구럼비는 우리 마을이잖아.”

“…….”

아이들의 얼굴이 민지를 따라 점점 더 굳어졌다. 민지의 말을 듣자 나도 너무 헷갈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을을 지켜줘야 하는 해군이 마을을 부순다고?! 아이들이 나에게 이유를 물어올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민지가 물어오면 어떻게 하지? 나는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빨리 여기서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

 

 

93~95_

“여기 앉아서 저길 한번 봐.”

그제야 망루 위에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럼비가 한눈에 보였다. 늘 구럼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엄청 신기했다. 구럼비는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커보였다. 아주아주 커다란 새가 날개를 양쪽으로 쫙 펴고 우리 마을을 안아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런데 형은 여기 왜 왔어요?”

“강정마을 지키러 왔지. 지킴이라고 쓴 거 보이지?”

“우리 마을을 지켜요? 누가 우리 마을을 괴롭혀요?”

“해군기지로부터 지켜야지.”

그 말을 하면서 형은 구럼비 쪽을 바라봤다. 해가 막 지고 있었다. 금빛 나는 햇빛이 구럼비에 닿아 반짝였다. 별들이 구럼비 위로 쏟아지며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 사이로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해군기지가 생기면 좋은 거 아니에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형에게 물어봤다.

“꼭 필요하다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면 안 되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충분히 의견도 들어봐야지. 이렇게 사람들 괴롭히고 이간질시키면서 들어오면 안 되는 거 아니겠니?”

‘이간질’이라는 말에 나는 잠깐 주춤했다. 정확한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슈퍼 아줌마와 황씨 아저씨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도 아마 이간질 때문일 것이다. 그분들은 이전에는 엄청 사이가 좋았었다.

“해군기지가 생기면 일단 바다는 지킬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거 때문에 싸움이 날 수도 있어. 너도 친구가 비비탄 총을 가지고 여기저기 겨누고 있으면 너한테 쏠지도 모르니까 괜히 불안하지?”

“네.”

“그럴 땐 어떻게 해?”

“친구 총을 뺏거나 저도 장난감 총을 사면 되죠. 더 좋은 걸로!”

“응. 그거랑 비슷한 거야. 우리 중에 누가 진짜 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봐. 그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쏠 생각 없이 그냥 자기를 지키려고 총을 가졌을 수도 있어.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려고. 그런데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불안해지거든. 그 총이 자기를 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돼. 그러니 자기도 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지. 그러다 까딱 잘못하면 진짜로 서로 총을 겨누게 될 수도 있고.”

 

 

187~188_

할망, 많이 아팠지요?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나는 할망 위에 이렇게 앉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저, 저 저 사람 좀 봐요. 할망이 쪼개진 자리에 맨살이 닿았나 보네.

저런, 피가 나네! 할망, 그래도 좋으시지요? 저 예쁜 발들을 좀 보세요.

발이 할망 몸에 닿으니 사람들 얼굴도 다시 뽀얗게 피어나요!

오래간만에 다들 웃고 있네요.

 

할망도 어서 일어나 춤을 춰봐요!

노래는 이제 내가 할게요.

내 노래에 지금부터는 할망이 춤을 춰요.

그렇게 우리 같이, 여기, 오래 있어요.

 

냇길할망, 서낭당할망, 우리를

우리 구럼할망 굽어살펴 주세요.

냇길할망의 가슴에 고인 할망물을

구렁할망 쪽으로 보내주세요.

우리를 씻겨주세요.

우리를 살려주세요.

구렁할망을 다시 품어주세요!

할망, 할망, 구렁할망

이제 그만 일어나요 우레레레레 일어나요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참사랑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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