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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고미숙 <고미숙의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 북드라망 2015

 

 

‘우주 유일의 고전평론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고미숙 선생님은 ‘몸, 삶, 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감이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러 강연 동영상에서, 고전뿐만 아니라 읽고 쓴다는 것의 위대함을 역설하시는 말을 들으면 묘하게 설득이 된다. <로드클래식>은 세계적인 여행기 고전을 엮어 해석과 의미를 더한 책이다. 대이동의 시대에 여행의 꿀맛, 여행의 고생살, 여행의 진수를 두루 알려주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차례

1부. 열하일기

2부. 서유기

3부. 돈키호테

4부. 허클베리 핀의 모험

5부. 그리스인 조르바

6부. 걸리버 여행기

 

 

 

서유기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귀에 쏙 꽂히는 노래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던 애니메이션 덕분인지 이 중국 고전은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다. 없는 듯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삼장법사, 천방지축 팔방미인 손오공, 미워할 수 없는 욕망 덩어리 저팔계, 답답하지만 든든하기도 한 사오정이 펼치는 아슬사슬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접하니 ‘헉, 이렇게 깊은 뜻이!’ 하는 놀라움이 찾아온다.

 

거리는 십만 팔천 리, 시간은 도합 14년, 그 사이에 겪은 재난은 81난, 하늘과 땅 바다가 수시로 열렸다 닫히고, 길목마다 등장한 요괴의 유형도 동물, 식물, 곤충, 신선 등등,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모험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여행의 목적은? 석가여래가 계신 서역(천축)에 가서 경전을 구해오는 것이다. 왜? 깨달음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이들이 보여주는 가벼움 저변에 참 심오하고 기특한 뜻이 있었던 것이다. 중생구제라는 원대한 비전과 함께 이들에게 절실했던 것은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었다.

 

@pixabay

 

손오공의 출생비밀(?), 손오공은 원래 돌멩이였다. 진화를 했는지 변신을 했는지 우주적 화학작용이 일어난건지 몰라도 원숭이 같은 사람, 사람같은 원숭이가 되었다. 손오공은 수보리조사의 수제자가 되어 육칠 년 동안 도와 선을 깨닫고 껑충껑충 뛰는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그 힘이 자연으로부터 왔음을 망각하고 소유, 증식, 폭력으로 휘두르다 500년 동안 오행산에 갇혀 지낸다.

 

돌원숭이를 구해줄 스승은 삼장법사다. 그는 진현장(陳玄裝)이라는 실존 인물로 『대당서역기』를 저술했고 수많은 경전을 번역한 불교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다. 그는 금산사 스님의 손에 길러졌지만, 이미 10세(世)를 돌면서 수행한 구도자다. 그래서 삼장법사는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비실비실하고 허당 같은 인물이지만 어떤 순간에도 서역에 경전을 구하러 간다는 그들의 목적을 잊지 않는다.

 

한 끼에 ‘네다섯 말의 밥’을 먹어야 하고, 간식으로 ‘구운 떡 백 개’를 먹어야 하는 저팔계는 여색에도 밝아 온갖 고초와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탐욕을 채우기 위해 손오공과 삼장법사를 이간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여행에서 낙오되지 않고 미션을 완수한다.

 

이 팀의 막내인 사오정은 서왕모의 반도대회 때 옥파리(玉玻璃) 하나를 깨뜨려 옥황상제의 진노를 산 탓에 요괴가 되었다. 사오정은 어리석음의 전형이지만, 성질 더러운 큰형과 철딱서니 없는 둘째형 사이를 잘 조율해 나가는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처음엔 오직 앞으로 가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다. 요괴들을 피하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봤자 요괴들은 다시 도래했다. ‘건너뛴 삶’이 ‘무서운 괴물’이 되어 다시 돌아오듯이. 그래서 중반부를 넘어서면 이 밴드의 행보가 좀 달라진다. 굳이 자신들의 길을 방해하지 않는데도 요괴들과의 전투를 불사한다. 요괴들이 ‘니들이 뭔 상관이냐, 그냥 갈 길을 가라’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요괴들을 물리쳐 중생의 번뇌를 덜어 주고자 하는 자비심이 증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구국에선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고, 멸법국에선 승려들의 고난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또 금성국에선 병든 왕을 진맥해서 담을 흩어준 다음 그 마음의 병까지 고쳐 주겠다며 요괴와 한판 대결을 벌인다. 봉선국에선 비를 불러 오랫동안의 가뭄을 해결해 주고 세 명의 왕자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무공을 전수해 주기도 한다. (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