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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로버트A. 존슨 <신화로 읽는 남성성 He> 동연 2006

 

 

신화는 살아있는 실체이며,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저자는 당부한다. 이 책은 성배를 찾아 떠나는 파르시팔(Parsifal) 신화의 스토리와 상징의 해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12세기에 탄생한 성배신화에는 현대인들에게도 유효한 남성의 심리가 담겨있다. 성배신화를 통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의 내면에도 있는 남성성을 경험할 수 있고 우리가 당면한 딜레마를 해결할 통찰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부왕

@pixabay

 

이야기는,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던 성배가 보존되어 있는 성배의 성에서 시작한다. 이 성에 사는 어부왕은 사춘기로 들어설 무렵 구운 연어를 삼키다가 목에 상처를 입고 고통으로 울부짖는다. ‘상처로 신음하는 어부왕’의 탄생은 기독교에서의 에덴동산에서의 추락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지나치게 순진한 의식과는 결별하고 자의식의 발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연어를 삼킬 수도 연어를 맛본 경험을 잊을 수도 없는 갇힌 상태의 아픔은, 성장기 소년들이 마주한 강렬한 체험을 따라 살아갈 수도 그것을 잊을 수도 없는 상태로 재현된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심리학적 발전을 3단계로 나눈다. 원형적인 패턴에 따르면, 어린 시절은 무의식 상태의 완전함, 이 무의식적 완전함은 중년기에 이르러 의식적 불완전함으로 발전하고, 그 뒤 노년기에 이르면서 의식적 완전함으로 발달한다. 신화에서 어부왕은 발달 단계상 첫 번째에서 두 번째 단계로 전환 중이다. 내면세계와 외부세계가 제대로 분화해야 고도로 발달한 의식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그 후에 우주와의 하나됨이나 고차원적인 정신의 발달이나 세상과의 통합에 대한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을 떠나기 전에 먼저 에덴 동산을 떠나야 하는 것이고, 같은 장소라고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길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의식(consciousness)을 의미하는 상처는, 오직 어부왕이 자신의 내면 작업을 할 때만 견딜만하다. 내면 작업이란 젊을 때 무심코 일어났던 상처로 인해 시작된 의식화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신화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는, 왕이 통치하는 곳이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정원이며, 가장 깊은 내면의 정원의 품격과 특질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왕이 건강하게 잘 지내면 우리도 잘 지내게 된다. 현대인의 내면의 정원에 거주하고 있는 어부왕이 상처를 입은 상태여서, 그들이 외적으로도 고통과 소외를 겪는다고 예상할 수 있다.

 

진짜 순진한 바보가 궁정에 등장하여 특정한 질문을 하는 순간 어부왕의 상처가 치유된다는 예언이 전해 내려온다.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에 따르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의 네 가지 기능 중에 어느 한 기능이 우세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사람의 기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편 우세한 기능에 반해 열등한 기능도 있다. 거의 모든 삶의 가치가 우세 기능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런 식으로 정신이 발전하고 강화되면 될수록 우리는 어부왕의 상처를 겪게 된다. 우리 내면에서 분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은 열등한 기능이 결국 어부왕의 상처를 치유하게 될 것이다.

 

 

 

파르시팔

@flickr

 

이제 이야기는 웨일즈 지방에서 천민으로 태어난 어느 소년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어머니 품 안에서 평안하게 살던 순진무구한 소년 파르시팔은 길에서 만난 5명의 기사들의 후광에 압도되어 기사가 되기 위한 모험의 길을 나선다. 아서왕의 궁전엔 6년 동안 웃지 않던 우울에 빠진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이 파르치팔을 보자 웃음을 터뜨린다. 최고의 기사가 궁정에 들어서면 그 여인이 웃게 되리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던 터, 아더왕은 파르치팔을 즉각 기사로 임명한다.

 

기사가 된 파르시팔은 수많은 기사들과 싸워 이기고 이들을 아더왕에게 보내 원래 자기가 섬겼던 왕에게 했던 맹세를 파기하고 아더왕을 섬기겠다는 새로운 맹세를 하게 한다. 이것이 삶의 중간지점의 모든 남성에게서 일어나는 문화적인 절차로, 하나하나 다른 중심을 지닌 에너지를 굴복시켜 영예로운 왕의 지배하에 그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남성이 자신의 경륜을 고양시키는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바로 이것이다.

 

파르시팔은 스승 구르몽에게서 진정한 남성다움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을 배운다. 특히 파르시팔이 성배의 성에 이르면 “성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파르시팔이 첫 번째 어부왕을 만나고 성배의 성에 이르렀을 때 이 질문을 하지 못한다. 추녀와 은둔자와의 만남을 통해 질문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큰 실수임을 깨닫고 두 번째 성배의 성에 방문해 본인의 임무를 완수한다. “성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성벽이 흔들이며 대답이 들린다. “성배는 성배왕을 위해 존재한다.” 이는 삶이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라 부르는, 융이 참나(the Self)라 부르는,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넘어선 더 큰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그 존재를 위해 성배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기적이 일어난다. 상처 입은 어부왕이 치유되어 환희에 가득 차서 자리에서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