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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김동철·송혜경 <절기서당> 북드라망 2016

 

 

이 즈음까지 오면서 우리는 새해를 세 번 맞이했다. 양력 1월 1일, 설날 1월 24일, 그리고 입춘인 2월 4일. 연월일을 나타내는 방법은 크게 양력, 음력, 절기력 세 가지이다. 달력에서 제일 크게 쓰여 있는 숫자가 양력을 나타낸 것이고, 간간이 작은 숫자로 표시된 것이 음력, 거의 보름을 주기로 두 글자로 된 단어로 표시된 것이 절기력이다. 일상의 커다란 흐름은 양력을 기준으로 하지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음력을 따르고, 입춘, 입하, 입추, 입동 등 계절감을 느끼고 표현할 때는 절기력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시간의 표식을 활용한다.

 

절기력은 태양이 움직이는 24걸음이다. 한 해 농사를 주기로 보름 간격으로 마디를 둔 것이 절기이니, 시작, 진행, 마무리의 리듬이라고 볼 수 있겠다. 코로나19의 공포감을 안고 조심스레 입춘을 건너고 우수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다. 시작을 참 힘겹게 하고 있는 셈인데, 이 시간이 순조롭게 지나가고 좋은 일들로 채워지는 한 해이기를 희망한다.

 

 

 

 

차례

봄의 절기들

입춘/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

여름의 절기들

입하/소만/망종/하지/소서/대서

가을의 절기들

입추/처서/백로/추분/한로/상강

겨울의 절기들

입동/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

 

 

 

입춘

언제부터가 봄일까?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절기인 동지가 하늘의 입장에선 봄의 출발점이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밤은 점점 짧아지고 낮이 조금씩 길어진다. 낮이 길어지면서 지구가 점점 따뜻하게 데워진다. 그래서 고대에는 동지를 일 년의 시작점으로 삼았던 왕조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구가 서서히 데워져 땅에 봄이 이르는 데는,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소한과 대한을 지나 입춘에 이를 때 봄은 이제 땅에 도착한 셈이다.

 

봄은 어떻게 오는가?

@flickr

태양의 열은 바람을 일으킨다. 정지하고 움츠려 있었던 겨울로부터 봄기운을 불어넣는 바람은 갇혀 있던 벌레를 땅 위로 올려 보내고,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을 문 밖으로 내보낸다. 이런 봄바람은 산들산들, 온화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입춘은 인월(寅月)에 있는데, 여기서 인(寅)은 12지신(地神)으로 보자면 호랑이에 해당한다. 겨울에서 봄이 튀어나오려면 호랑이처럼 거침없는 기운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굶주린 호랑이처럼 봄이 튀어나온다고 생각하면, 여린 새싹도 실은 엄청난 힘으로 과거를 박차고 나온 용감한 호랑이인 셈이다.

 

‘입춘’이란 글자엔 어떤 뜻이 있나?

입춘(入春)일까 입춘(立春)일까? 어찌보면 ‘봄에 들어선다’는 뜻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와 전자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옛사람들은 절기에 더 능동적인 의미를 담은 것 같다. 다가오는 시간에 슬쩍 발을 얹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봄을 세운다’는 행위로 이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마치 봄이 온갖 만물들이 동참하지 않고는 지을 수 없는 건축물인 것처럼. 혹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동참해야만 그려 낼 수 있는 작품인 것처럼.

 

어떤 마음가짐으로 입춘을 보낼까?


봄철 석 달을 발진(發陳)이라고 하는데 천지가 모두 생겨나고 만물이 자라난다. 이때는 밤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난다. 천천히 뜰을 거닐고 머리를 풀고 몸을 편안하게 하여, 마음을 생동하게 한다 무엇이든 살려야지 죽여서는 안 되고, 주어야지 빼앗아서는 안 되고, 상을 주어야지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봄기운에 호응하는 것이니 양생의 방법이다.

『동의보감』, 「내경편·신형」, 18쪽


봄에는 긴장한 몸과 마음을 한껏 풀어놓거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시기에 적절하다고 말한다. 이것을 양기라고 하는데, 양기는 가을에 꺾이고 겨울에 얼어 있다가 봄에 움직이기 시작해서 여름에 치성하는, 만물을 살리고 키워 내는 기운이다. 따라서 봄에는 이 양기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행동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입춘에는 재미있는 세시풍속들이 있다.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이는 입춘에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해놓는 것이다. 거지의 움막 앞에 밥을 한솥 해놓는다든지, 마을의 끊어진 다리를 이어 놓는다든지. 이런 훈훈한 일은 얼어 있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알게 모르게 이 따뜻한 마음이 인연을 따라 번져 나가는 것이다. 또 하나 ‘아홉차리’라는 풍속은 입춘에 무슨 일을 하든 9번을 하는 것이다. 천자문도 9번 읽고, 새끼를 꼬더라도 9번 꼬고, 매를 맞아도 9번, 밥을 먹어도 9번 먹었다고 한다. 동양에서 10을 채우는 것은 완성을 의미해서, 약간 모자란 듯 일을 남겨 놓고, 이후에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는 것이 핵심이다.

 

입춘을 보내는 우리의 미션은?

@pixabay

입춘에 농부는 주로 거름을 준비하고 종자를 손질한다. 농부가 봄에 사생결단하여 꼭 해내야 할 일은? 바로 씨앗 발아다! 그래서 입춘에 농부는 씨앗이 잘 틀 수 있는 조건들을 형성한다. 튼튼한 종자를 찾고, 종자가 잘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땅에 영양분을 듬뿍 주는 것이다. 절기상으로 양력 1월은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다. 1년 중 가장 추운 이때, 1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골똘히 궁리한다. 근 한 달 동안 가닥을 잡았다면, 구체적으로 출발점을 마련하는 때가 바로 양력 2월 입춘이다. 그래서 입춘이 되면 농부는 올가을에 무엇을 수확할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종자의 종류에 따라 파종 시기와 수확 시기를 명확하게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입춘엔 꼼꼼히 디자인한 계획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마음을 펼치기(發心) 시작해야 한다. 그 계획이 눈앞에 그려지고 손안에 잡힐 수 있을 것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여야 하고. 그것이 한 편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든, 시험 합격이든, 마음 한 뼘 넓어지는 일이든 그것은 각자가 정하면 된다. 결과물은 다르지만 밟는 스탭은 같다. 그 씨앗이 잘 발아하게 될 조건들을 구성하는 것! 바로 이것이 봄의 생기에 참여하는 우리들의 자세다.